|
|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 Date |
2025/11/03 23:37:06 |
| Name |
하늘의이름 |
| Subject |
[LOL] 쵸비 응원글 |
|
안녕하세요.
4강이 끝나고 시간이 조금 흘렀네요. 결승이 끝나면 다들 또 한동안 그 여운을 곱씹게 될 것 같아, 지금 이 시점에 짧은 뻘글을 남깁니다.
저는 현재 대학에서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평범한 교수입니다. PGR은 제가 모르는 것이 생길때마다 질문글을 열심히 검색하고 가끔 질문도 드리면서 감사히 이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LoL 이라는 게임을 처음 알게 된 건 약 10년 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스타크래프트를 정말 좋아했기에, LoL이 스타를 몰아내고 인기를 얻는 것이 썩 반갑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그때가 2015년 롤드컵 시즌이었던 것 같아요. 스타때부터 좋아하던 김동준 해설이 “리븐이랑 피오라가 붙는다, 꼭 친구 불러서 봐야 한다”고 하던 멘트를 우연히 들으면서 처음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스맵과 마린의 대결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확실하진 않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스타크래프트를 즐겨했고, 이영호 선수의 팬이었습니다. 그는 시대의 지배자였죠. 이제동, 김택용 같은 강력한 경쟁자들이 있었지만, 결국 승리의 기억은 늘 이영호에게 돌아갔습니다. 그 시절 친구들과 신양에서 같이 게임보고, 기숙사 돌아가면서 경기 이야기하는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무튼, 이영호가 나오는 게임 기다리고, 프로리그를 항상 기다리던 것도 기억나네요.
돌아와서, 우연히 아프리카 TV에서 락스타이거즈와 SKT T1의 경기를 보면서 LoL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SKT보다 2인자처럼 보이던 락스타이거즈에게 더 끌렸습니다. 프레이, 스맵을 특히 좋아했죠. 하지만 그 시절엔 LoL을 열정적으로 보진 않았습니다. 락스가 될 듯하면서도 늘 한 끗 차이로 미끄러졌고, 그래서 결승전이나 중요한 경기만 챙겨보곤 했습니다. 특히 2016년 롤드컵 4강은 아직도 팬으로서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리핀 이라는 팀이 나타났습니다. 갑자기 등장해 모든 팀을 압도하던 그 팀은 정말 신기했죠. 락스도 해체되고 삼성에도 정이 안 가던 시절이라, 자연스레 그리핀을 응원하게 됐습니다. 팀의 중심은 타잔이었지만, 제 눈에는 쵸비 선수의 플레이가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완벽에 가까운, 잘 죽지도 않는, 거의 완성형 같은 느낌이었죠. 저는 그때부터 쵸비가 ‘스타의 이영호처럼 될 선수’라고 생각했습니다. 정규 시즌에서 그 기대에 부응했지만, 롤드컵 진출에는 실패했죠. 그래도 신생팀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그리핀은 유독 2등의 서사가 많았습니다. 결승에서 힘을 내지 못하는 쵸비의 모습도 보였고, 늘 SKT1, 페이커에게 좌절하곤 했습니다. 제가 이영호에게서 봤던, 기억했던 서사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래도 한 번 마음이 간 팬심은 쉽게 식지 않더군요. 그 무렵 저는 박사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시차 때문에 경기를 챙겨보긴 어려웠지만, 정규 시즌의 쵸비는 늘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다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늘 아쉬움이 남았죠. 그렇게 DRX, 한화, 그리고 젠지에 이르러 드디어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4연속 우승이라는 놀라운 기록도 세웠죠. 물론 그 과정에서 팀 구성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그래도 젠지는 분명 쵸비가 중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응원하는 팀이 잘하면 게임 시청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렇지, 역시 이영호의 서사를 쵸비가 가져가는구나..! 그렇게 생각이 들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쵸비는 롤드컵 무대에서 정규 시즌의 모습만큼을 보여주진 못했습니다. 이제는 완연한 베테랑이 된 그가 여전히 그 무대를 극복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MSI 2연패, LCK 4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도, 롤드컵은 여전히 젠지와 쵸비의 무대가 아니네요.
이번 KT전 4강이 끝나고, 예년과 마찬?가지로 접속하던 LOL 관련 커뮤니티를 닫고, 현생을 살다가 문득 ‘쵸비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응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부디 쵸비 선수가 본인의 경기 스타일처럼 덤덤하게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플레이오프 때 힘들었던 시절에도, 수차례 준우승에도 좌절하지 않았던 것처럼요.
그리고 일반 팬으로서의 솔직한 마음은 이렇습니다. 지금처럼만 해도 괜찮습니다. 스스로 자기위안 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1년 중 10개월은 승자의 기분으로, 2개월은 패자의 기분으로 사는 셈이잖아요. 이게 얼마나 좋아요. 결국 나중 훗날에 선수 평가가 어떻고, 역대 순위가 어떻고, 하는 것은 솔직히 저 같은 라이트 팬들은 지금 당장 관심이 없습니다. 롤드컵이 모든 선수의 꿈의 무대이자 목표인 건 맞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쵸비 선수가 너무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LCK와 MSI에서 써내려가는 본인만의 역사도 충분히 값지니까요.
결국 모든 건 잘 될 거라 믿습니다. 저는 연구실 학생들에게 늘 말합니다. “연구란 열에 아홉, 혹은 그 이상 실패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인내하고 노력하면 결국엔 좋은 결과를 얻는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선순환을 계속 만들 수 있다”고요. 세상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지금의 자리에서 묵묵히 도전하면, 언젠가 쵸비 선수도 진심으로 만족할 결과를 얻을 거라 믿습니다. LCK에서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물꼬를 트고, 선순환을 만들 수 있을거에요. 좌절을 했겠지만, 얼른 털어버리길 바랍니다. 다만 LoL이라는 종목의 특성상, 같은 팀으로 오래 함께하기 어렵다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지금의 젠지는 정말 케미가 잘 맞고, 모두가 쵸비만큼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기에 내년에도 함께하길 바라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잡담이 길었네요. 제 3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제 여가의 많은 부분을 쵸비 선수가 속한 팀을 응원하며 보냈습니다. 이제는 부교수가 되었고, 보살펴야할 원생들과 집에 아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일과를 마치면 밤에 LoL을 열심히 봅니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네요. ^^ 페이커라는 훌륭한 롤모델도 있으니, 쵸비 선수가 본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써 내려가길 바랍니다. 저는 결국, 쵸비를 스타의 이영호와 닮은 서사로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쵸비 선수, 그렇게 만들어주세요.
비록 인터넷 상이지만 언제나 응원합니다. 쵸비 화이팅.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